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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어학연수 캐공

설레임을 안고 시작한 캐나다연수 A to Z!

Prologue. 왜 영어가 좋아?


25년 한국 토박이면서 한국어도 잘 못하는(?) 내가 영어에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

극성인 엄마께서 어릴 적부터 영어에 노출 되야 공부가 된다며 사주신 여러 애니메이션 비디오? 영어로 된 잡지? 신문? 전혀 아니고~ 바로 고1때 만난 멋쟁이 영어선생님!!! 자상하시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에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바로 나의 영어선생님 덕분에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쌤한테 칭찬 받고자 더 열심히 공부했고 수업시간 다들 졸고 딴짓할 때 조금이라도 관심 받고자 손들고 발표하고 아는 것도 질문하고. 점점 영어에 대한 매력에 빠져갔고 결국엔 대학교도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말 그대로 영어영문학! 영어학은 재미있는데 문학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경영학과로 복수전공을 결심했고 영어에 대한 흥미는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어학원에 취업하게 되었고 2년동안 초, 중,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다시금 가르치는 일과, 영어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났다. 일은 조금 고되고 힘들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던 도중, 불현듯이 든 생각. ‘뉴요커가 된다면? 캐네디언이 된다면?안될건 없지. 한번 나가봐?’

Part.1 뭐부터 해야 해? 혼자선 무리….. 유학원을 찾자!


2년간 열심히 일했다. 물론 처음엔 월급 받으면 옷사고, 신발사고, 가방사고……영어 공부를 위해서 유학생활을 결심한 이후 돈을 아껴 저축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하는 유학생활이라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당시 검색을 해본다거나 유학원에 알아본다거나 하는 정보 수집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부모님의 반대로 내 자신한테도 꼭 나가겠다는 자신이 없었던 거 같다. 2년간 총 2천만원을 모았다. 거기다 엄마께서 천 만원을 빌려주셨다. 1년간의 어학연수. 갖고 있는 자금은 총 3천만원. 충분한지, 모자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차라리 대학원을 가라는 부모님의 반대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내 돈 내가 벌어서 가겠다는데 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냈고 본격적인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일을 그만 둔지는 2012년 12월 말. 한 달간은 백조의 자유로움을 좀 누리고자 여행도 다니고 잠도 퍼질러 자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카페 가서 커피만 주구장창 마시며 미드만 봤다. 그리고 1월 말, 3월중엔 출국하자는 결심을 갖고 유학원을 탐색했다. 이미 “캐나다”로 국가를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왕이면 캐나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학원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 다녔다.

1. 왜 캐나다야?

간단하다. 미국은 무섭고, 영국은 비싸고, 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하고, 뉴질랜드는 왠지 심심할 것 같고. 환율도 부담스럽지 않고 나름 안전한 캐나다가 적정했다.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또 존중 해주고. 다행스럽게도 지금 환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더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 일하며 돈을 벌고 있어서 한국 돌아가기 전 후엔 조금이나마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다.

2. 왜 캐공이야?

“캐공” 이름만 들어도 딱 캐나다 전문이구나! 라는 생각을 가진 캐공 유학원을 찾아갔다. 한 시간 넘는 상담 끝에 캐나다 토론토 ILSC학원으로 결정! 이후 학비결제, 항공예약, 홈스테이 결정 등등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비자도 한 달이 채 안되어 나왔고 모든 수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렇게 부드럽게 흘러가도 되나 할 정도로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혼자서 하려고 했다면 정말 큰일났겠구나 생각하며 캐공 유학원에 감사를 표한다. 정성스런 상담부터 비자 수속까지 내가 했던 일이라곤 서류떼오세요 하면 떼오고, 신검받으세요 하면 받고^_^

사실 지금도 이곳 캐나다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캐공부터 생각난다. 원래 이럴 땐 엄마 아빠가 생각 나는 게 정상적인데 난 캐공사이트부터 들어가 질문을 남긴다. 참 든든한 오래된 친구 같다. 늘 같은 자리에서 머무는………

Part2.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디딜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캐공 덕분에 물 흐르듯 흘러간 어학연수 준비. 1월 말부터 3월 말 출국하기 까지 시간도 촉박하지 않고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여러 어학연수 준비 카페나 블로그에 들락날락 거리며 여러글을 읽어봤는데 어떤 사람은 비자가 안나와서 출국을 미루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유학원 사기도 당했단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 조금 조바심도 나고 걱정도 됐는데 운이 좋게도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3월 24일 새벽. 캐나다 토론토 땅을 밟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간 여러 나라를 여행을 다니긴 했지만 말 그대로 여행, 관광을 위한 방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년간 내가 생활하기 위해, 살기 위해 온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나 혼자 타국에서 1년간 살아야 한다. 설레기도 했지만 겁이 덜컥 났다. 가뜩이나 오기 직전 심한 감기에 걸려 14시간이 넘는 비행에 벤쿠버에서 환승 까지. 길고 긴 비행이 더욱더 길게 느껴진터라 도착 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짐을 찾고 유학원측에서 무료픽업을 지원해줘 픽업 해주시는 분을 무사히 만나고 최소 한 달간 살게 될 홈스테이로 이동했다. 3월 말인데도 날씨가 상당히 추워 깜짝 놀랐다. 새벽 1시쯤 도착했음에도 홈스테이 가족분들은 날 환영해 주셨다. 배고파할 나를 위해 신라면도 끓여주셨다. 학원과 거리가 조금 먼 게 단점이었지만 김치 없이 밥 못 먹는 날 위해 매달 김치도 사다 주시고, 라면, 떡볶이, 차돌박이까지 한국냄새 물씬 나는 음식을 많이 해주셨다. TESOL하면서 학원생활이 조금 힘들어지고 등하교를 매일 2시간씩 보낼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4달만 살고 다운타운으로 이사를 나왔지만 나의 첫 홈스테이에 상당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신 가족분들에게 너무너무너무 감사하다!

Part3. 6개월간 ILSC와의 동거동락


내가 선택한 ILSC 어학원. 벤쿠버, 몬트리올, 토론토, 샌프란시스코 등등 여러 나라, 도시에 브랜치를 갖고 있는 상당히 큰 어학원이다. 어학원 선택하기 전에 내가 고려했던 사항은 딱 세가지.

한국인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대규모인가? 커리큘럼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솔직히 어딜가나 한국인은 많아서 비율을 따지긴 소용없었고 커리큘럼이 가장 중요했다. 다양한 수업.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코업비자로 신청해서 온 경우기 때문에 인턴기회를 갖는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느냐.였다.

1. 왜 ILSC? 장점은?

총 3군데의 어학원으로 좁혀졌고 게 중 ILSC 학비가 가장 비쌌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이유. 다양한 커리큘럼. 토론토 다운타운에 위치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가질 수 있을 것 같았고 TESOL평도 좋았기 때문에. 매 세션마다 레벨테스트를 거쳐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매 달 다양한 엑티비티가 있다. CN타워 투어, 야구나 하키 경기 관람, 박물관가기 등등 저렴한 가격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같은 클래스에서 만난 친구 이외에서 다양한 엑티비티에서도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1. TESOL? (Teaching of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캐나다에 온 큰 목적중 하나인 테솔. 3개월과정으로 길진 않지만 참 타이트하게 진행된다. 나는 3개월동안엔 ESL에 집중하면서 일단 입을 트이는 기회와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갖는 기회를 가졌고 나머지 3개월은 테솔을 들었다. 4주가 1세션인데 2주동안은 여러 이론들을 배운다. 3주차엔 지옥의 레슨플랜을 짜고 4주차엔 학원 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첫 세션엔 나보다 영어를 잘할지도 모르는 학생을 가르친다는게 너무 부담스러웠고 레슨플랜을 작성하는 것도 처음이라 스트레스 투성이었다. Grammar, Listening, Vocabulary, conversation 등 다양한 범주에 맞춰 basic2-4반과 Intermediate1-2 반을 가르친다. 테솔하면서 나한테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물론 공부할 것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 스트레스를 여간 받는게 아니었지만…. 덕분에 살이 5kg는 쪘다.





2. 코업비자?

공부한 만큼 돈 벌 수 있게 해주는 비자. 나는 6개월 공부-6개월 일하는 코업비자를 받았다. 이곳에서 college를 다닐것도 아니고 어학원을 1년 내내 다니긴 뭐해서 반반씩 공부하고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코업비자를 신청했다. 이곳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들 말 들어보면 코업비자 거절된 사람도 있고 학생비자만 나온 경우도 있는데 나는 참 다행이다. 사실 나도 코업비자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벤쿠버 경유해서 토론토로 오는데 벤쿠버 이민국에서 비자를 받았다. 대기하는 사람도 많았고 이민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느릿느릿 일처리를 하는데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결국 내 차례가 되어 여러 서류 보여주고 질문에 대답도 잘했는데 학생비자만 주는게 아닌가. “저기요! 저 워킹퍼밋이랑 학생비자 둘다 받아야 하는데요? 이 서류 봐봐요.” 했지만 시크하게 학생비자만 주신 직원분. ‘첫날부터 꼬이는구나’라는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일단 토론토로 오는 비행기로 환승하고 어학원에 문의했더니 아무일도 아니라는듯이 “걱정마. 신청하면 금방 나오니깐 기다리만 해~”라고….결국 2주만에 워킹 퍼밋까지 잘 받고 잃어버리지 않게 여권에 워킹퍼밋, 스터디퍼밋까지 두장의 비자를 잘 붙여놓고서야 마음을 놓았다는…..

Part4. 연수 꼭 가야해?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는데 주위에서 “영문관데 당연히 연수한번 갔다와야 하는거 아니야?”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가뜩이나 귀도 얇은데 “정말 그래야 하나? 단기라도 다녀와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난 나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때 갔다 올걸…..” 지금도 늦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뭘 잘 몰랐을 때 한번 갔다 와 볼걸 하는 후회도 들지만 지금 난 여기 있으니깐. 지금도 한국에 많은 젊은이들이 어학연수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가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어학연수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연수의 “가치”가 있다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걸 따지기 전에 한번쯤은 “경험”해 보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물 밖 세상은 참으로 넓고 다양한 것 투성이다. 이런 저런 사람들, 이런 저런 일들. 10개월간 짧지만 굵직했던 토론토 생활을 돌아보면 ‘그동안 난 참 편협한 시야를 갖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20여년간 좁은 우물 안에서 지내면서 이곳이 좁은지도 모르며 살았다. 그러다가 우물 밖을 한번 내딛는 순간 ‘내가 지냈던 곳은 참으로 좁았구나. 이렇게 넓고 새로운 새상도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너 영어 얼만큼 늘었니?”, “외국인이랑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만큼 돼?”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1년안에 그렇게 영어 잘하면 영어 못하는 사람이 어딨냐? 나는 세상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야!” 어학연수라는게 단지 “영어”공부만을 위한 목적이 된다면 단언컨대 그 연수생활은 99%실패라고 생각한다. 그건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이고 1~2년 짧은 기간동안 영어를 늘린다는게 힘들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나의 시야를 조금 더 넓히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법을 배우는 것. “영어공부” 만큼 중요한 연수의 목적이 아닐 까 생각해본다.

Part5. 느낌 아니깐! 성공적인 어학연수 생활을 위해서


아직 나는 연수중이고 나의 연수생활이 성공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나의 목표는 오로지 영어공부였다. 하지만 4~5개월이 지나면서 영어가 계속 제자리에서 머무는 것 같다는 정체기를 느끼게 되었고 곧 공부도 공부지만 여러 경험을 쌓아보자. 라는 다짐으로 목적을 바꾸었다. 그 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 앞으로 하기 힘들어질 일들을 해보자!

10개월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느낀 “성공적인 연수를 위한 방법”은? 바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딪치자. 학원 다니면서 알게 된 몇몇 한국 친구들은 학원이 끝나자마자 근처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 학원-도서관-집 이런 생활을 반복한다. 마치 한국에서 처럼………

나는 조금 달랐다. 학원 끝나면 일단 새로운 곳을 찾아 다녔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할 기회를 찾아 다녔다. 나의 목적이 그랬으니깐 “영어+새로운 경험”

친구와 식당을 가도 주문하고 돈내고 끝이 아닌 “처음이라 그런데 추천좀 해주세요. 이건 뭐에요? 이건 어때요?” 등등 물어보고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처음엔 대답을 들어도 잘 못알아들었는데 나중에 되니 눈치도 생기고 귀도 열리게 된다. 버스에 타도 옆자리 사람과 잠깐 대화해보기, 은행이나 커피숍 줄 기다리면서 앞-뒤 사람과 이야기 해보기 등등. 이곳에 널린 게 돈내고도 살 수 없는 기회들인데 그런 기회들을 못보고 지나친다면 안되겠지.

Language exchange사이트도 나름 괜찮다. 맘맞는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영어배우고 한국어 가르쳐줄수도 있고. 문제는 그런 친구를 만나는게 정말 힘들다는 것. 하지만 난 운 좋게도 한국에 관심 많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영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데 한번 알려주면 기억도 잘하고 응용력도 좋다. 어려서 그런가…? 아무튼! 좋은 인연을 만난 덕분에 생일도 같이 보내고 노래방도 가고 한국음식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Part6. 외국인노동자되다


6개월간 학원생활을 마치고 여행도 다니고 휴식도 취했다. 한국에선 가기 힘들다는 쿠바도 다녀오고 가까운 뉴욕에도 다녀왔다.

From Mar.2013. to Jan. 2014.

6개월 학원비로 800여만원

쿠바 여행경비로 100여만원

뉴욕여행경비로 100여만원

캠핑비용으로 90만원(사고로 렌터카 수리비 60만원포함….ㅜ.ㅜ)

홈스테이비, 렌트비 600여만원

교통비 84만원

큼직하게 들어간 돈은 대략 이정도. 거기다 생활비 매달 적게는 6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쓴거 같다. 결국 3천만원에서 시작한 돈이 지금 400여만원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돈은 떨어져가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뭔가 아쉬워 일을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업 비자로 왔기에 나는 합법적으로 돈을 벌수 있다구!

내 친구들은 어학원에서 중개해준 무급 인턴을 3개월가량 하고 있었다. 나중 이력서에 경험 한가지를 더 써넣을 수 있도록 스펙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저런 경험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던 나는 본격적인 구직생활을 시작한다. 2013년 9월 초에 학원을 졸업하고 11월부터 잡헌팅을 시작하게 된다. 무려 두 달을 나쁘게 말하면 놀고 먹으면서 보냈고 좋게 말하면 쉬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여러 경험을 했다. 일을 구하기 위해서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할 일.

1. 창피하지만 해야 할 첫 번째 단계.

이. 력. 서.

이력서 폼을 다운받고 나의 기본 정보와 학력, 짧은 나의 이력을 적었다. 일단 나는 카페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여러 카페에 온라인지원을 했고 동시에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이어링 문구가 붙은 곳에만 들어가서 “나 저 사인 보고 왔다. 아직 하이어링하니? 이력서 줘도 될까?” 라고 하며 돌렸다. 처음 한 카페에 들어갈때의 그 떨림이란…… “are you guys still hiring?” 이 짧은 말이 어찌나 안나오던지……. 나중엔 얼굴에 철판을 깐듯이 자연스러워진다. “Sorry. We are not hiring at this moment. “ 이란 최악의 말을 들어도 웃으면서 “no problem. Bye. Have a nice day!” 라는 대답을 하고 나올정도.

3. 칠전팔기

온라인 지원을 한 곳에서 4번의 전화 면접을 봤지만 한곳은 비자가 짧아서 거절당하고, 3곳은 인터뷰까지 잡혀서 2차까지 인터뷰를 봤지만 “나중에 연락해 줄게”라는 말을 듣고 일주일 내내 기다렸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름 영어를 잘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쉽게 일을 구할 줄 알았는데 11월 내내 인터뷰만 보고 이력서만 돌린게 다구나. 라는 생각이들면서 나의 다짐이 수십번도 무너졌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그냥 한국들어와”라는 말에 “아니 그래도 한달만 더 도전해볼게. 그래도 안되면 한국가야지 뭐. 그래도 여기서 인터뷰 보고 도전하는 자체가 다 배움의 과정 아니겠어?”라고 대답했다.

12월달. 날은 추워지고 밤은 짧아졌다. 금방 어두워지고 슬로우시즌이라 하이어링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이력서를 돌리던 중 팀홀튼에서 잡페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더 도전 해 보게 된다. 이력서를 내고 연락이 오기까지 어찌나 떨리던지. 하루만에 연락이 왔고 면접약속을 잡고 면접을 보러갔다. 그런데 이게 왠걸. 토요일-일요일 이틀에 걸친 인터뷰에 나는 토요일 아침 9시에 갔는데 대기자가 A4용지 두장 가득한게 아닌가. 게다가 옆에서 인터뷰 대기하는 사람은 캐네디언. 속으로 든 생각. ‘아 망했다. 그냥 경험 한번 떠 쌓는다 생각하고 가야지.”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면접 본 인터뷰어는 사장님이었다…….. 대기하면서 다른 지원자가 인터뷰하는거 살짝 엿들었는데 사장님 너무 공격적으로 물어보시고 표정도 없어서 ‘아 제발 저 분만은 아니길….다른 사람이 인터뷰하길’ 바랐지만 결국 그 분과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 후 유니폼 사이즈 물어보고 집 위치 같은거 물어보길래 ‘나 고용할라나?’라는 기분좋은 생각이 들었고 그건 착각이 아니라 나의 “촉”이었다!

**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한달간 좌절을 맛봤기에 '아...한인식당으로 눈을 좀 낮춰야 하나'라는 고민도 하긴 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캐네디언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것! 한인밑에서 일할바에는 그냥 한국으로 가겠다라는 일념하나로 그렇게도 참을성 없는 내가 한달을 기다렸던것 같다. 나를 비롯해 일을 구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딱 두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A. 현지 가게, 식당을 알아보고 안되면 바로 의사소통이 조금이나마 원활하고 구하기 쉬운 한인오너를 구하는 류. B.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캐네디언 밑에서 일하겠다 류. 나는 후자였고 그 기다림 끝에 큰 행운을 얻게 된것 같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몸소 느꼈던 경험이었다.!

4. Timmy가 되다.

일주일 후 “You’ve been hiring congratulations!”라는 전화를 받았고 오리엔테이션과 트레이닝을 걸쳐 지금 4주째 일하고 있다. 첫 페이첵을 받을 때의 기분이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매니저가 페이첵을 건네주는데 “Omg! It is my first pay check in Canada!” 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일은 참 힘들다. 8~9시간씩 서서 일하고 또 팀홀튼은 fast service가 중요하기에 빠릿빠릿해야 한다.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넌 정말 빨리 배우는구나.” 사실 실수도 많이 했다. 처음엔 모니터에 찍힌 오더를 잘못 읽어서 잘못된 메뉴를 만들기도 하고 커피를 쏟기도 하고…. 그럴 때 마다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좌절감을 느낄 때쯤 트레이너가 건넨 한마디 “Nobody’s perfect!”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른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나의 능력이 모자른 거겠지.



엄마께 이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제일 앞 머리큰게 너야?" 하셨다능.....

차마 "아니야!"라고도 못했다는.......ㅜㅜ 외국인들 얼굴 작나요 왜!



5. 매니져 제안을 받다.

난 참 일을 잘하는 것 같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엔 창피하지만 여태 일했던 곳에서 일 잘한다 라는 소리를 안 들어본 적이 없다. J 저번 주에는 매니저가 “ 너 매니저 할래?” 라길래 별로 진지하게 묻지도 않았고 장난인 거 같아서 “아니. 힘들 거 같아. 난 그냥 팀 맴버가 좋아.” 라고 했더니 다음날 “너랑 일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너 매니저해. 꽤 재밌어.” 라고 하길래 일단은 “고맙지만 괜찮아.”라고 대답은 했지만 내심 기분도 좋고 인정받고 있구나 라는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 워킹퍼밋은 올해 5월말에 만료된다. 매니저가 비자 연장 할거냐고 묻길래 워킹퍼밋은 연장하기도 어렵고 될지 안될지 확실하지도 않다라고 했더니 “아니야! 나도 7년간 연장하면서 일하고 있는걸? 너가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라고 했다. 지금 살짝 고민중이다. 일하는 게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긴 하지만 같이 일하는 코워커, 손님들이 너무 좋다. 물론 가끔 picky한 손님들도 있지만 그건 지극히 소수다. 가장 좋은건 2주마다 페이를 받는 거. 매니져, 슈퍼바이져 등등 계급은 있지만 수직이 아닌 수평적이라는 것. 한번은 매니저가 “너가 바쁘고 힘들면 나를 시켜라. 바닥이 더러운데 너가 바쁘면 나를 불러서 청소를 해달라고 해도 된다. 도움을 요청하는걸 부끄러워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참 감동적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비자를 연장할 지,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겐 아직 4달의 생각할 시간이 더 남아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던 간에 후회없는 나의 연수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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